<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신예희

숲다 2022. 3. 26. 19:30

제목부터 맘에 드는 책이다. 글을 맛깔나게 쓰시는 신예희 작가님은 20년 이상된 프리랜서로 일, 휴식, 삶에 대한 마인드를 이 책에 풀어놓으셨다. 프리랜서가 일하는 태도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던 책이다. 좋았던 문장이 정말 많지만 가장 좋았던 일하는 태도와 관련된 문장들을 기록해둔다. 

 

 

<지속 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속 좋았던 문장들

 

p.41 창작자란 뭔가를, 뭐가 되었든 간에 짠 하고 만들어내야 한다. 일단 짠하고 난 후엔 조마조마하다. 내가 만든 것에 완전한 확신을 갖고 싶지만 좀체 그렇게 되지 않는다. 구석구석까지 불안함이 잔뜩 배어 있으니 타인의 인정은 물론, 응원과 격려까지 바라게 되는 거싱다. 불안하게 외롭게 작업한 시간을 감정적으로 보상받고 싶어서겠지.

 

p.42 문제는 이거다. 일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곧 나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중략)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한다 고칠 게 있으면 고치면 된다. 아무래도 아니다 싶으면 일을 그만두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대신 '앗, 이 사람 방금 정색했어. 인상 썼어. 나를 싫어하나 봐!'라고 생각한다. 때론 카톡을 주고받다가도 동공이 흔들린다. 이모티콘을 쓰지 않았어. 화났나 봐.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었어. 열 받았나 봐. 문장이 너무 짧아, 역시 날 싫어해. 그래서 내가 한 작업도 싫은가 봐. 아아 이쯤 되면 망상인데요...

 

p.42 이럴 때 나는 글을 쓴다. 워드 프로그램의 새 문서 파일을 열고, 허공에 하소연하듯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쓴다. 와 나 미치겠네. 이거 어떡해?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처음엔 두서없지만 조금씩 정리가 된다. 이건 고, 저건 스톱이라며 마음을 정할 수 있게 된다.

 

p.60 어느새 아는 것이, 아니 아는 것만 많아지니 좀체 들이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껏 들어온 소소한 칭찬에도 목을 매게 된다. 오 잘하는데, 괜찮은데! 라는 소리를 계속 듣고 싶다. 마음이 약해지고, 부끄러움이 자라난다. 이 달달한 칭찬을 더 듣지 못하게 되면 어쩌지? 상상만 해도 두렵다. 겁난다. 창작자의 자기 복제는 그래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괜한 짓 않고, 하던 거나 계속하겠다는 마음. 우물 인테리어를 잘해놓았으니 그냥 이 안에서만 개굴개굴 지내겠다는 마음.

 

p.61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보통은 상대방 마음에도 들지 않는다. 곧 수정 요청이 날아온다. 때론 다른 작가를 찾겠다는 통보를 받는다. 힘이 쪽 빠진다. 깨질 때마다 내적 눈물을 흘리고, 잘릴 때마다 상처 받는다. 일은 일일 뿐이라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내가 그렇게 별로예요? 나 이제 끝이야? 징징징. 진정하자. 이것은 나라는 인간이 거절당한 것도, 나라는 인간을 수정하라는 요청도 아니다. 직접 만든 작업물에 애정을 품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게 곧 나 자체는 아니라는 걸 잊지 말자.

 

p.63 수정을 하나의 기회라고 생각하는 쪽이 여러모로 생산적이다. 다른 눈으로, 다른 방향에서 내 작업물을 새로이 볼 기회. 어라, 이렇게 할 수도 있구나 하며 한 가지 더 배울 기회. 그렇게 산을 넘고, 숨을 돌리며 성취감을 만끽한다. 그거 봐라, 내가 하면 또 하는 사람이야. 쉽진 않았지만 해냈어. 이런 경험이 쌓여 연륜이 된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퇴근을 해야 한다. 단순히 사무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게 퇴근이 아니다. 온 마음으로 '일의 스위치'를 꺼야 하는데, 근무 시간과 장소가 유용한 프리랜서에겐 이게 특히 중요하다. 자, 오늘의 일은 여기까지야. 내일 출근해서 또 일하자. 이렇게 자연스레 퇴근해야 한다. 방에서 거실로, 의자에서 소파로, 카페에서 거리로, 어디로든 마음 편한 곳으로 퇴근. 그래야 마음속에 미움이 차곡차곡 쌓이는 걸 경계할 수 있다.

 

p.64 크고 작은 수정을 요구하거나 때론 나를 해고하기도 하는 업무 담당자 역시 그저 인간이다. 상사와 나 사이에 낀 가엾은 인간. 한국 기업문화의 특성상, 담당자라는 월급쟁이 개인에게 뭐 그리 대단한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는 그럴싸한 결과물을 얼른 상사에게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다. (중략) 어쨌든 내 쪽에서나 그쪽에서나 원하는 건 한 가지다. 이 일이 잘되게 만드는 것. 중간에 삐거덕거리더라도 그러려니 하며 스르륵 넘기는 자세도 필요하다. 결국 이번 일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욕은 속으로만 짧고 강하게 하고 표정을 잘 관리하자. 사람 일은 모른다. 우리는 꾸준히 일하며, 내가 여기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걸 계속 보여줘야 한다. 능력을 어필해야 한다. 

 

p.66 어렵사리 일을 그만두고 나니 무척 홀가분했다. 원래도 잘 자지만, 평소보다 잠도 더 잘 잤다. 욕 좀 먹겠구나 생각했지만, 욕이 배 뚫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나는 곧 또 다른 일을 시작했다. 상대방도 다른 일을 할 것이다. 일이란, 오고 간다.